2010년 9월 19일 일요일

<이어도> 충격적인 영상으로 표현된 종족번식의 욕망과 현대문명과의 충돌

<이어도 (1977)>
감독 : 김기영
원작 : 이청준
출연 :  김정철, 최윤석, 이화시, 권미혜, 박정자, 박암

김기영 감독이라면 한국의 대표적인 컬트 영화 감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공감하고 감상에 젖을 만한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기 보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은밀한 욕망들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 왔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불편함이 주는 묘한 쾌락에 빠져들었던 많은 열광자들이 결국 그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의 대열에 올려 놓았을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김기영 감독의 <이이도>는 이러한 김기영의 작품 중에서도, 아니 어쩌면 한국 영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영상을 선보인 작품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껏 봐 왔던 한국 영화 중에서는 제작년도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그 표현의 강도가 가장 쎘던 영화였으니까요.


외화수입을 보장받기 위한 의무제작편수를 맞추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이어도>는 1970년 발표된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작과는 많이 다르게 각색이 되었다고 하는데,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알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이어도"가 본 작품에서 크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걸로 봐서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관광회사 직원인 선우현(김정철)은 제주도에 새로 건설하게 될 '이어도'라는 호텔을 홍보하기 위해 전설 속의 섬 이어도를 찾는 선상 이벤트를 벌이게 됩니다. 이어도를 찾아나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주일보 기자 천남석(최윤석)의 거친 항의에 선우현은 그와 술잔을 나누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같이 술을 마시던 그날 밤 천남석은 거센 폭풍 속에 사라지고 선우현은 살인범으로 의심을 받게 됩니다. 자신을 살인범으로 몰아세우던 천남석의 상사(박암)와 함께 천남석의 고향인 파랑도를 찾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던 선우현은 파랑도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무당(박정자), 천남석의 동거녀였던 박여인(권미혜), 천남석의 친구 고춘길(여포), 그리고 신문보기를 즐기는 술집 작부(이화시) 등을 만나 그의 과거 행적들을 하나 하나 들춰 나갑니다.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중 하나인 종족번식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인 후반분의 시간(屍姦) 장면에 이르러 이 욕망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어린시절 천남석 집안의 대를 이어주겠다고 약속을 한 민자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남석을 찾아 전국을 떠돌다 결국 파랑도로 돌아와 천남석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민자는 남석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대로, 그를 대신 해 섬을 방문한 선우현과 관계를 합니다. 천남석의 시체가 발견되자 그녀는 결국 시간을 통해서라도 그의 아이를 잉태하고자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몇 년이 흘러 사내아이를 데리고 나온 민자를 파랑도에서 만난 선우현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일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품은 채, 그들을 뒤로 하고 섬을 떠납니다.


섬의 남자들은 대부분 이미 이어도에 빼았겼거나, 혹은 이어도가 이끄는 죽음을 피해 섬을 떠나 있기에 남성들이 드문 파랑도에서 남성들은 쾌락을 위한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닌, 종족 번식의 욕망을 충족 시켜줄 대상으로 묘사가 됩니다. 민자는 천남석의 아이를 가지고자 십 수년을 기다려 왔으며, 천남석의 동거녀였던 박여인은 천남석을 통해 아이를 잉태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합니다. 섬의 권력자 무당은 심지어 남성들을 씨돼지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현대 물질 문명이 이러한 종족 번식의 욕망에 대한 장애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 도시 생활을 하는 선우현 부부는 불임으로 고생하는 것으로 묘사가 되지만, 파랑도에서는 한번의 관계로 상대 여성이 간절히 원하는 아이를 잉태시키게 됩니다. 천남석이 큰 기대를 가지고 투자했던 전복 양식과 이를 파산으로 이끌고 간 환경 오염의 관계는, 종족 번식의 욕망을 현대 물질 문명의 발달이 가로막는 모습을 좀 더 직접적으로 묘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본 작품의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문어체적인 대사가 이야기의 흐름을 뚝뚝 끊어 놓기도 하며, 편집 역시 매끄럽지 못합니다. 이러한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서는 인간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해 내는 힘이 있습니다.


극장 상영 당시에는 검열에서 잘려나갔지만 본 DVD에는 온전하게 실려 있는, 시간 장면의 충격적인 묘사는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이나 파졸리니의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에 못지 않습니다. 불편함 속에서도 묘하게 빠져드게 하는 힘, 그게 바로 김기영 감독의 영화가 갖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국내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한 김기영 컬렉션 DVD셋에 실린 네 작품 (<고려장>, <충녀>, <육체의 약속>, <이어도>) 중의 한 편으로, 화질은 비디오 테잎 보다는 나은 수준이지만DVD다운 화질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역시 국내 출시한 <화녀 '82>에 비하면 엄청 좋은 화질입니다. 국내 필름 보관 실태를 볼 때 이 정도라도 나와 준 것 만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복원판으로 깨끗한 화질의 블루레이로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을 만날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DVD 출시에 정성을 들이는 태원에서 나온 타이틀인 만큼 90여 페이지에 달하는 국/영문 안내 책자를 포함한 패키지 구성도 깔끔하고, 각 타이틀 마다 음성해설 트랙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작품에는 영화 평론가 김영진과 영화 감독 오승욱의 음성해설이 실려 있습니다.


P.S.

김기영 감독 하면 역시 2008년 제 61회 깐느 영화제에 복원판이 소개되기도 하였던 <하녀 (1960)>가 대표작입니다. 김기영 감독 자신도 <화녀(1971)>, <충녀 (1972)>, <화녀 '82 (1982)> 등 수많은 변주 혹은 리메이크를 시도했었고, 최근에는 임상수 감독이 전도연, 이정재, 서우 등 톱스타들을 이끌고 리메이크하여 화제를 모은 적도 있습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적극적 지지로 세계영화제단 (WCF: World Cinema Foundation)에 의해 복원된 버전이 국내에 DVD로 출시가 되어 있습니다. 일부 장면들에서 화질에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훌륭하게 복원이 되어 제작 년대와 한국 영화의 필름 보존 실태를 감안하면 아주 훌륭한 화질을 자랑합니다. WCF에서 복원한 영화인 만큼 한국 영화 최초의 Criterion Collection DVD/Blu-Ray 발매를 기대해 봅니다.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본인이 직접 국내 정식 발매된 DVD에서 스크린 캡쳐하였습니다.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해당저작권자(영화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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